<377> 신들과 인간들의 목적을 깊이 아는 분 그래서 여쭙니다 人 * 天이 어떻게 존재하고 있고, 그들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관해서, 붓다는 잘 알고 있다.... 제 2 작은(小) 장, 14 담미카경 スッタニパータ377. 第2 小さな章 14.ダンミカ経 2. 실로 당신은 신들과 이 세상 인간들의 최종적으로 돌아갈 곳과 궁극의 목적을 알고 계십니다. 심오한 것을 보는 분이며, 당신께 견줄 사람은 없습니다. 세상사람은 당신을, 탁월한 눈 뜬 사람(붓다)이다고 부르고 있습니다. ○中村元先生訳 377 実にあなたは神々とこの世の人々の 帰趣と究極の目的とを知っておられます。 奥深いことがらを見る方で、あなたに比ぶ人はいません。 世人はあなたを、優れた目ざめた人(ブッダ) だと呼んでいます。 왜냐하면, 당신은, 하늘[의 신들]을 포함하는 세상[의 인간들]이 향할 곳을, 나아가서는, [그들의] 도달할 곳을, [있는 그대로] 깨달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가장 깊고 면밀한 의의(도리)를 [있는 그대로] 보는 자로서, [당 신과] 견줄 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당신에 관하여, [현명한 자들은] 『가장 탁월한 깨달은 자』라고 말합니다. ○正田大観先生訳 380.(377) なぜなら、あなたは、天〔の神々〕を含む世〔の人々〕の 赴く所を、さらには、〔その〕行き着く所を、〔あるがままに〕覚知す るからです。 かつまた、精緻なる義(道理)を〔あるがままに〕見る者として、〔あ なたと〕比ぶべき者は、〔世に〕存在しません。 まさに、あなたのことを、〔賢者たちは〕『最も優れた覚者』と説きま す。(2) ○1, 영문 Chapter 14 − KÛLAVAGGA − DHAMMIKASUTTA 당신은 이 세상의 처신과 신들의 그것을, 그리고 최종의 목적을 알기 때문입니다 : (사물의) 미묘한 의미를 보는 데에 당신과 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 사람들은 당신을 훌륭한 붓다라고 합니다. 2. 'For thou knowest the doings of this world and that of the gods, and the final end; there is nobody like thee seeing the subtle meaning (of things); they call thee the excellent Buddha. ○2, 영문 377 (14) Dhammika 담미카 왈 : 당신은 온 세상과 그리고 온 하늘세계에 걸쳐서 인간(존재)이 어떻게 살 것인지를, 아아! 그리고 저 넘어의 길을 알기 때문입니다 : 아무도 당신의 짝이 될 자는 없습니다, 당신은 미묘한 최종목표를 보는 자입니다. 진실로 사람들은 당신을 "깯다릉ㄴ 사람,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Dhammika : For thou dost know man's faring thro' the world And deva-realm, ay ! and the way beyond ; And none's thy match, thou seer of subtle goal, Truly they call thee “man awake, elect.” 기독교의 "신이 뽑아 쓰는 사람" 이란 뜻인가? ○3, 영문 XIV DHAMMIKA SUTTA. 2 Thou knowest the condition of the world and the gods and the Paráyana (Nibbana). Thou art unequalled, thou knowest the subtle meaning of things : they say that thou art indeed the excellent Buddha. 당신은 (인간)세상과 신들의 상태와, 최상의 것(열반)을 아십니다. 당신은 견줄 수가 없으며, 당신은 사물의 미묘한 의미를 아십니다 : 사람들은 당신이 진실로 탁월한 붓다라고 합니다. ○パーリ語原文 379. ‘‘Tuvañhi あなたは・実に gatiṃ 行く先を Na ない lokassa 世界の pajānāsi 知っている catthi 又・居る tuvañhi あなたを・実に sadevakassa, 神々を含む parāyaṇañca; 終極の目的を・と tulyo 比べられる人は buddhaṃ ブッダと nipuṇatthadassī, 微妙な意味を見る人 pavaraṃ 最上の vadanti. 呼びます 담미카는 붓다에게 「출가와 재가의 수업자는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가?」를 질문하였지만, 왜 붓다에게 질문하는지, 그 이유를 이 게송에서 말하고 있다. 다만 나(해설자)로선, 담미카는 불환과(不還果)의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므로, 그가 알고 싶다고 한 것은 <*실은> 알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깨달음의 경지는, 아라한이 되지 않으면, 아직 나아갈 앞이 있는 것이므로, 자신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필요한 것이 있는가를 확인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불환과에서 아라한과에 이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을 알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때, 필요한 것은 올바른 견해다. 당시느이 인도에서는 수많은, 사상가, 종교가가 있어서, 각자 자신의 견해에 근거하여 지도를 하고 있었다. 수많은 견해가 있었다. 처음에 작은 차이가 있으면, 나중엔 터무니없는 결과로 되는 것이다. 이 점에서, 붓다는 올바른 목적, 도달할 경지를 확실히 알고, 그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고통을 없애는 것, 열반이라는 도착점을 명백히 하고 있다. 그것을 사성제・팔정도 라는 형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의 지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심오한 것을 보는 분」, 「가장 깊고 면밀한(精緻) 의의(도리)를 〔있는 그대로〕 보는 자」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붓다는 확실히 그런 분이다. 그래서 담미카는 붓다에게 질문을 드렸던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마음의 수행은 마음을 보는 수행>이다. 보통, 인간은 자기 바깥의 일에 관해서는 언제나 관심을 가지고 관찰한다. 그러나, 마으믕ㄹ 보는 것은 자신의 내부를 관찰한다는 작업이다. 이것은 실제로는 꽤나 어려운 작업이다. 붓다는 그것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 담미카의 질문에 대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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