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큰(大) 장, 4 헌과(獻菓) 경

<469> 거짓도 교만심도 없는 여래야말로 공양의 과자를 받을 가치 있다
제 3
큰(大) 장,
4 헌과(獻菓) 경
第3 大きな章 4. 献菓経(순다리카・바라드바쟈 경) 15.
거짓도 없고, 교만심도 없고,
탐욕을 떠나고, 내 것으로 집착하는 일 없고, 욕망을 가지지 않고,
분노를 제거하고, 마음 고요하며,
슬픔의 때를 떨쳐버린 바라문인 <완전한 사람>(여래)는,
공양의 과자를 받기에 어울린다.
○中村元先生訳
469
偽りもなく、慢心もなく、
貪欲を離れ、わがものとして執著することなく、欲望をもたず、
怒りを除き、こころ静まり、
憂いの垢を捨て去ったバラモンである<全き人>(如来)は、
お供えの菓子を受けるにふさわしい。
그의 안에, [기만의] 환상이 머물지 않고, [아상의] 생각이 [머물지] 않는다면,
---그가, 탐욕을 떠나고, 아집 없고, 바라며 기대하는 것 없고,
분격을 제거하고, 자기가 적멸된 자라면,
○正田大観先生訳 ---그가, [차된] 바라문으로서, 슬픔의 때를 밀어버렸다면,
---여래로서, 공양 바치는 과자[를 받을] 가치가 있다.
474.(469)
彼のうちに、〔欺瞞の〕幻想が住みつかず、〔我想の〕思量が〔住みつ
か〕ないなら
――彼が、貪欲を離れ、我執なく、願望なく、
忿激を除き、自己が寂滅した者であるなら
――彼が、〔真の〕婆羅門として、憂いの垢を運び去ったなら
――如来として、献菓〔を受ける〕に値します。(17)
○1, 영문
04 Sundarikabharadvagasutta
속임수 없고, 오만함 없이 거기서 사는 사람, 탐욕을 벗어났고, 이기성을 벗어났고,
갈망을 벗어난 사람, 분노를 쫓아낸 사람, 고요한 사람, 슬픔의 해독을 제거해버린
바라문인, 여래는 바치는 물건을 받을 만하다.
16.
'He in whom there lives no deceit, no arrogance, he who is
free from cupidity, free from selfishness, free from desire,
who has banished anger, who is calm, the Brâma/n/a who
has removed the taint of grief, Tathâgata deserves the
oblation.
○2, 영문
(4) Bhãradvãja
교활함도 자부심도 없이 사는 사람,
욕심과 '내 것'과 희망에서 벗어난 사람,
모든 분노가 없어졌고, 자아가 극히 시원해진 사람,
바라문인 그는, 슬픔의 흠이 완전히 제거되었다.
그렇게-온-사람인 그에겐 공양을 바칠 가치가 있다.
469.
In whom abideth neither guile nor pride,
He who is free of greed and 'mine' and hope,
Void of all wrath, exceeding cocd-of-self,
A brahman he, with stain of sorrow razed. ,
Oblation-worthy is the Man-thus-come !
○3, 영문
cool
[이 영문은, <467> 게송에서 시작하여,
<478> 게송 까지 하나의 문장으로 이어진다.
후렴구를 시작(467)과 끝(478)에다 두고,
중간의 것에선 후렴구를 생략해버렸다. ]
Sutta 4. Offerings
who, void of guile and pride,
cares not to get or have,
true Brahmin, wrathless, spent;
그는 교활함도 자부심도 없고,
얻거나 가지기에 관심 없고,
분노가 없어진, 진실한 바라문은 <*@@@을> 보냈다 :
○パーリ語原文
473.
‘‘Yamhi
na
その中に ない
māyā
偽り
yo
vītalobho
およそ 貪りを離れ
Panuṇṇakodho
怒りを除き
vasati
na
住ま(ない) ない
amamo
我執なく
???
māno,
慢心
nirāso;
願望なく
abhinibbutatto,
自ら寂滅を得て
yo
brāhmaṇo
その者は バラモンとして
sokamalaṃ
憂いの垢を
Tathāgato
arahati
(その)如来は 値する
pūraḷāsaṃ.
献菓に
ahāsi;
除いた
이 게송은 몇 개의 말로 여래(如来 - 붓다)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처음은 <마야(maya) -- 거짓, 기만, 환영(幻影).이 없다고 하는
말이다. 이것의 의미는 좀 알기 어려울 것 같다. 보통사람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이 말을
이해할 수 없다. 예컨대, 불교에선 <무아(無我)>란 것을 가르치고 있지만, 보통사람에겐 자아(我)가 존재한다고 하는 실감이 있다.
그러나, 여래로선 자아가 있다는 따위의 환영(幻影)은 없다고 올바르게실감할 수 있는 것이다. 환영에 속임 당하는 일은 없는
것이다.
다음은 <마노(mano - 만심, 慢心)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는 마음이다. 비교에는 3종이 있다.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여 자신이 위라고 생각하는 마음은 증상만(増上慢 - 고만, 高慢)이라고 한다. 자신과 타인이 동등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은 동등만(同等慢), 자신이 타인보다 아래라고 생각하는 마음은 비하만(卑下慢)이라 한다. 여래에겐 만심이 없기 때문에,
타인과 비교하는 일이 없다. 만심에서 생기는 괴로움이나 고통은 없다.
여래에겐 탐욕이 없다. 자아가 없기 때문에, 자기에 집착하는 아집(我執)은 없다. 또한, 특별한 원망(願望)이 있을 턱이 없다. 나날이
담담하게 필요한 것을 행할 뿐이다. 곤란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동정하는 마음으로 도와주는 것이다.
물론 분노는 없다. 분노를 억제하는 것이 아니고, 분노의 마음이 없으므로, 분노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적정(寂静), 평안인 열반의 경지에 드는 것이다. 슬픔 고통의 원인은 갈애(渇愛)와 무명(無明)이지만, 갈애와 무명이
없는 여래에겐 슬픔 고통이 없다.
이런 여래(붓다)는 공양 올리는 과자를 받기에 어울리는 분이다. 이런 분에게 헌상하는 것에는 큰 공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