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큰(大) 장, 4 헌과(獻菓) 경

<471> 선정으로 격류를 건넌 여래야말로 공양의 과자를 받을 가치 있다
제 3
큰(大) 장,
4 헌과(獻菓) 경
第3 大きな章 4. 献菓経(순다리카・바라드바쟈 경) 17.
미음을 한결같이 조요히 하여 격류를 건너고,
최상의 지견으로 이법을 알고,
○中村元先生訳 번뇌의 더러움을 다 멸하고서, 최후의 신체를 지니고 있는
<완전한 사람>(여래)는, 공양의 과자를 받기에 어울린다.
471
참고 : 최후신보살>
こころをひとしく静かにして激流をわたり、
最上の知見によって理法を知り、
煩悩の汚れを滅しつくして、最後の身体をたもっている
<全き人>(如来)は、お供えの菓子を受けるにふさわしい。
그가, [마음이] 고정된 자(선정에 든 자)로 되고, 격류를 넘어서 건넜다면
---그리고, 최고의 견해에 의해 법(진리)를 알았다면
○正田大観先生訳 ---번뇌가 완전히 멸한 자이며, 최후의 육신을 지니는 자이고,
여래로서, 헌상하는 과자[를 받을] 가치가 있다.
476.(471)
彼が、〔心が〕定められた者(禅定者)となり、激流を超え渡ったなら
――しかして、最高の見解によって法(真理)を知ったなら
――煩悩が滅尽した者であり、最後の肉身を保つ者であり、
如来として、献菓〔を受ける〕に値します。(19)
○1, 영문
04 Sundarikabharadvagasutta
평온한 사람, (존재의) 격류를 건넌 사람, (그것에 대한) 가장 높은 견해를 가지고 담마를
아는 사람, 열정이 파괴된 사람, 마지막 몸을 입고 있는 사람,
여래는 올려 바치는 물건을 누릴 자격이 있다.
18.
'He who is composed, who has crossed over the stream (of
existence) and knows the Dhamma by (taking) the highest
view (of it), he whose passions are destroyed, who is
wearing the last body, Tathâgata deserves the oblation.
○2, 영문
(4) Bhãradvãja
471.
He who with mind-intent hath crossed the flood
And Dharma in the yondmost view hath known.
집중된 마음으로 격류를 건넌 사람
가장 저 넘어의 견해로 법을 안 사람,
마지막의 몸을 지니고 있는 해독 없는 사람,
그 이렇게-온-사람은 올려 바치는 물건을 받을 가치가 있다.
The cankerless who his last body bears,
Oblation-worthy is the Man-thus-come !
○3, 영문
who stoutly crossed the Flood,
whose vision saw the Truth,
whose Cankers now are gone,
whom clay shall clothe no more;
확고하게 격류를 건넌 사람,
꿰뚫어보는 힘으로 진리를 본 사람,
모든 해독이 이제 사라진 사람,
다시는 진흙이 옷으로 되지 않을 사람.
<태초에 진흙으로 사람을 창조했다...그러나,
이제 다시는 진흙이 몸으로 될 수 없는 사람.>
○パーリ語原文
475.
‘‘Samāhito
yo
心を統一して 彼は
dhammaṃ
真理を
udatāri
渡り
caññāsi
了解した
Khīṇāsavo
煩悩を滅尽した人
tathāgato
如来は
[이 영문은, <467> 게송에서 시작하여,
<478> 게송 까지 하나의 문장으로 이어진다.
후렴구를 시작(467)과 끝(478)에다 두고,
중간의 것에선 후렴구를 생략해버렸다. ]
Sutta 4. Offerings
arahati
値する
oghaṃ,
激流を
paramāya
最高の
diṭṭhiyā;
見解によって
antimadehadhārī,
最後身を保持者
pūraḷāsaṃ.
献菓に
마음을 통일하여 격류를 건널 수 있을까? 이 문제에 해답을 내기 전에, 이 문제의 의미를 설명하자!
<마음을 통일한다>는 것은 명상하여 선정에 든다는 말이다. 그리고 <격류>란 번뇌를 말한다.
즉, <선정에 들어서 번뇌를 극복하다>란 말이다.
선정에 들기 위해서는, 오개(五蓋 - 욕탐, 진에, 혼침・수면, 도거・악작, 의혹)라는 번뇌의 기능을
정지시킬 필요가 있다. 5개의 기능이 정지되면, 자연히 5지선(五支禅 ; 尋、伺、喜、楽、一境性)이
나타나고, 제 1 선정에 들어간다. 그러면, 일시적으로 번뇌가 없는 상태를 경험한다. 그러나 선정으로
번뇌가 없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선정에서 나오면 번뇌는 다시 나타난다.
그래서, 마음을 통일하여 선정에 들어간 것만으로는, <격류>라 하는 번뇌를 극복할 수 없다.
제 2행에서 얘기되는 <최고의 견해> 에 의하여 진리를 잘 이해할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지혜를
얻는 것이다. 선정에 드는 것으로,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할 수가 있게 된다.
그렇게 하면 지혜가 개발된다. 그 지헤의 힘에 의하여 모든 번뇌가 극복된다. 번뇌의 두목인 무명(無明)도
극복된다. 모든 번뇌를 지혜의 힘으로 극복하는 것을 해탈(解脱)이라 한다. 해탈한 사람은 아라한이다.
아라한은 생명을 윤회의 고통에 끌어다 맺는 모든 번뇌가 전혀 없기 때문에, 이제 윤회할 일은 없다.
그런 사람을 최후신(最後身)을 지니는 자라고 한다. 여래는 한 우주의 첫 아라한이므로,
물론 윤회하는 일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