病名診断をめぐる問題とは何か――診断名を求め、語る声

「장애인・가족 운동의 역사――고도경제성장기/국제 장애인의 해 이후」
호리 도모히사(堀 智久)
리츠메이칸대학 기누가사종합연구기구 박사후연구원
Ⅰ.배경과 목적
Ⅲ.국제 장애인의 해 이후(1980년대~)
1970년대 이후 일본장애인해방운동의 특징=「탈가족」을 주장
예를 들면, 일본의 「아오이시바」의 요코즈카 코이치(橫塚晃一)는 장애인해방운동
안에서 「울면서라도, 불효를 사죄하면서라도, 부모의 과잉보호적인 사랑(偏愛)을
뛰어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우리들의 숙명이다」 (요코즈카(橫塚)1975: 17)이라고
말하며, 부모가 가진 애정에 기인하는 억압성을 비판했다.
고도경제성장기(1960년대~): 「시설」의 확충
고도 경제 성장기 부모 운동의 주류는 중증장애아동 수용을 위한 시설 확충을 추구하는
운동이다. 부모들은 자신들의 과중한 활동보조부담이나 부모가 죽고 난 후 장애아동에
대한 불안을 사회에 호소하며 피나는 노력을 통해 수용 시설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운동을 전개해 왔다.
1970년대
들어서
장애인해방운동에 의한 「시설」비판
수용 시설의 확충은 「시설은 부모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며, 결코 장애인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푸른잔디회 가나가와현연합회(青い芝の会
神奈川県連合会) 1970:5)라고 주장하는 등 「부모 즉 정상인(健全者*)」만의 의도에
의해 추진되어 왔다고 비판했다.
목적
・・・ 그러나 부모 운동은 국제 장애인의 해 이후 장애인 본인들의
비판을 받아 그 주장의 양상을 크게 바꾸었다.
따라서 본 발표에서는 선천성사지장애아 부모회의 운동 사례를
중심으로 부모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주장의 양상을 전환시켜
왔으며, 장애를 가진 아동의 관점에서 운동을 해 왔는지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Ⅱ.고도경제성장기(1960・70년대)
선천성사지장애아부모회는 1975년 8월에 설립된다. 이 시기는
환경오염이 여러 가지로 문제가 된 시대로 아동의 장애
원인구명(究明)을 호소하는 운동으로서 시작했다. 특히
1974년의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 재판의 화해 결착(和解決
着)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탈리도마이드 증후군과 증상이
비슷한 선천성 사지장애아 부모회 아동들은 탈리도마이드의
영향은 받지 않은 비인정아(非認定児)로서 파악되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81년의 국제 장애인의 해 등으로
대표되는 사회적인 움직임에 영향을 받아, 정책 측면에서도
지금까지의 수용 시설의 확충을 중심으로 하는 시책의 양상을
근저에서 다시 보게 된다. 이로 인해 장애인들이 시설이 아닌
지역에서의 자립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시책의 필요성이
명확하게 이념으로서 논의된다. 또한, 국제 장애인의 해를
계기로 장애인 본인들의 사회적 발언의 고조가 보인다.
1980년대 이후에는 지금까지 장애인 본인의 운동과 관련성이 없었던
부모 운동에서도 장애인 본인의 관점을 무시할 수 없게 된다. 예를 들면,
1980년 1월 유엔에서 채택된 국제 장애인의 해 행동 계획에는
「국제장애인의 해의 중요 목적 중 하나는 장애인이 그들 [자신]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표명하고, 또 정책형성 기관의 일이나 사회일반의 관리
운영에 활발하게 참가」 (국제연합1982: 556)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라고 밝히고 있다. 또, 가족회의 기관지에서도
노멀라이제이션(normalization)이나 장애인의 주체성 존중을 주제로 하는
특집이나 기획이 많이 짜여진다.
장애인 본인의 주체성 존중
선천성사지장애아부모회에서도 1979년에는 장애인 본인이 심포지엄에 참가하게 되고,
이를 계기로 장애인 측의 의견이 부모회 모임 내부에서 반복적으로 이야기 되게 된다.
예를 들어, 장애인 본인의 입장에서 선천성사지장애아부모회에 참가하고 있는 혼다
마코토(本多眞), 요시오사무(由理)씨는 심포지엄에서 「오체만족이 이상적이지만 오체가
만족하지 않았다고 해서 결함인간 인 것은 아니며, 자유롭지 못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선천성사지장애아부모회 1982b:91-2)라고 말하고 있다. 부모들은 아이에게 「『장애』는
일상 바로 그것이며, 『불편』하더라도 충격적인(shocking)것은」 (선천성사지장애아부모의
모임 1995:281) 아니다 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②장애인해방운동의 비판: 장애의 「원인구명」에 내포하는
차별성
반공해·반약품피해운동과 대립하고 있었던 장애인해방운동의 비판의 공격 방향이,
선천성사지장애아부모회의 원인구명의 호소운동으로 향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1984년11월에는 전국아오이시바회와 논의의 장이 마련되기도 했다.
선천성사지장애아부모회의 원인구명의 호소는 「장애아의 출생을 『있어서는 안되는
특별한 것, 불행한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
출발점부터가 장애인 차별의 요인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점이,
선천성사지장애아부모회에 대한 비판이 초점이 되었다.
1980년대 이후, 선천성사지장애아부모회의 운동은 부모와 아동
사이의 당사자성 차이를 인식한 운동으로서 구체적으로는
「아이에게 장애는 있어도 좋다」라는 운동으로 그 주장의
양상을 전환해 간다.
예를 들면 1970년대부터 계속 해 온 사진전 활동으로 아이들의 사진을 보고
「불쌍하다」라고 느끼게 만드는 「환경오염이나 사회적 희생자로서의 증거가 되는
아동의 사진」을 전시했던 사진전 대신, 아이의 미소나 약동감 넘치는 모습을 강조한
사진전, 즉 아이들의 일상생활에 초점을 맞추고 생기 있는 아이들 모습의 사진을
전시할 수 있는 사진전으로 바뀌었다.
고도경제성장과 복지대책의 충실
일본은 목표 이상의 경제성장을 이루었으며, 1960년대 중반에는 미국에 이어 세계
제2위의 GNP를 달성했다. 한편 이 시기에는 국가복지예산 또한 고도 경제 성장에 의한
재정의 자연팽창을 유지할 수 있어 계속 증액해 간다. 사회복지 정책 전체로 볼 때는
복지육법체제가 확립되어 지금까지 복지 대상에 들지 않았던 중증장애아를 대상으로
하는 수용 시설의 건설이 사회적 주목을 받게 된다. 또한 복지시책의 확충을 배경으로
「지체부자유아 부모회」, 「심장병 어린이를 지키는 모임,
근디스트로피(근육장애(dystrophy) 협회」, 「중증심신장애아(인)을 지키는 모임」,
「탈리도마이드아를 가진 부모회」 등 많은 가족회가 결성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고도경제성장에 의한 환경문제의 심각화
급속한 공업화·지역개발로 인해 공해문제(피해가 심한 것으로는 「사대공해병」
(미나마타병(水俣病), 제2미나마타병(니가타(新潟)미나마타병) , 욧카이치(四日市)천식,
이타이이타이병)가 심각하게 대두된다. 또한, 전국 각지에서 환경 문제를 제기하는
주민운동(반공해운동·환경보호운동)이 일기 시작했다. 이에 선천성사지장애아 부모회
부모들은 자신들의 장애아이들이 이러한 일련의 환경오염에 의해 장애가 생긴 것은 아닐까
라는 의심하게 된다. 부모들은 「가족이나 아이가 받은 괴로움이나 슬픔이 다시 반복」되지
않고, 이러한 아이가 다시는 태어나지 않도록, 국가나 사회에 아동의 장애에 대한 원인구명을
호소하게 된다(선천성사지장애아부모회(先天性四肢障害児父母の会) 1995: 341).
선천성사지장애아부모회의 원인 구명에 대한 호소는
선천이상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 즉 「아동의 선천이상은
부모나 그 가계에 문제가 있다」라고 하는 편견을
불식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부모들은 아동의 장애에 대한
원인 구명을 호소하는 것으로 「아동의 장애는 부모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사회 전체의 문제」라고 주장하고 아동의
장애에 대한 일반사회의 이해나 관심을 요구해 갔다.
Ⅳ.결론
고도경제성장기의 수용 시설 확충을 위한 움직임은 단지 부모의
관점으로부터 추진된 것이었다. 본 발표에서 중심적으로 다룬
선천성사지장애아부모회의 1970년대의 원인구명에 대한 호소는
1980년대 이후에 전개된 운동의 관점에서 보면 부모와 아이의
관점을 동일시한 뒤에 전개된 운동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장애인식이라는 점에서도 부모들은 1970년대에는
「아이에게 장애는 없는 것이 좋은 것,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원인구명을 호소해 온 것에 비해,
1980년대 이후에는 아이의 관점에 입각하여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아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여 간다 .
다른
가족회에서도
유사
정신박약자육성회: 정신박약자 **본인의 의견을 존중
예를 들면, 전일본정신박약자육성회에서는 1990년 8월에 파리에서 개최된
국제정신박약자 육성회연맹 세계회의에 정신박약자 본인이 참가하는 등 여러 다른
나라의 정신박약자 관련 단체와의 국제적인 교류를 계기로 모임내부에서 정신박약자
본인 주체의 활동이 활발하게 된다. 지금까지 의심된 적이 없었던 정신박약자의
대변자로서 전문가와 부모의 역할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어, 정신박약자의 목소리에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일 필요성이 반복하여 강력히 주장된다. 지금까지 부모 측의
의향을 우선해서 수용 시설의 확충을 요구해 온 것에 대한 반성이 있게 된다 .
역자주)* 健全者(건전자)는 정상문명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견지 해 온 일본 장애인운동의 이념을 살리기 위해 비장애인이 아니라, 정상인으로 번역하였음.
**精神薄弱児者(정신박약자)는 시대적 용어 그대로 살려, 지적장애인이 아니라, 정신박약자로 번역함.